빗소리 들으며 걷기: 봄비 내리는 공원 산책의 매력


짙게 내려앉은 새벽의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 창밖을 두드리는 섬세한 빗방울 소리에 눈을 떴다. 축축하게 젖은 창밖 풍경은 밤새 내린 봄비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평소라면 늦잠을 즐겼을 토요일 아침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밖으로 나가고 싶은 기분에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우산을 펼쳐 들고 집을 나서는 순간, 흙냄새와 풀냄음이 섞인 촉촉한 공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평소 사람들로 북적이던 동네 공원은 빗소리에 잠긴 듯 고요한 분위기였다. 우산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방울은 마치 세상과 나를 분리시키는 막처럼 느껴졌고, 그 안에서 나는 온전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비내리는 공원을 빨간색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모습



공원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빗물에 젖어 더욱 짙어진 녹색 잎사귀들은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었고, 땅에 떨어진 꽃잎들은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채 아름다운 색깔을 드러냈다. 평소에는 잘 들리지 않던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도 빗소리 사이로 더욱 또렷하게 들려왔다. 마치 자연이 조용히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은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었고, 그 속에는 주변의 나무와 하늘이 흐릿하게 비쳤다. 그 모습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복잡했던 머릿속은 빗소리에 씻겨 내려가는 듯 차분해졌고, 잔잔한 평화가 마음속 깊이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산을 기울여 빗소리를 더 가까이 들어보았다.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 리듬감 있는 소리는 마치 자연이 연주하는 조용한 음악과 같았다.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참 동안 빗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주변에는 우산을 쓴 채 산책을 즐기는 몇몇 사람들의 모습만이 보일 뿐,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디지털 기기의 알람이나 시끄러운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의 소리에 집중하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공원을 한 바퀴 더 둘러보았다. 빗물이 고인 길을 조심스럽게 걸으며, 땅에 뿌리를 내리고 굳건히 서 있는 나무들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든든함을 느꼈다. 봄비는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고, 새로운 생명을 움트게 하는 생명의 물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 입구로 돌아오는 길, 빗줄기는 조금씩 가늘어지고 있었다. 촉촉하게 젖은 공기와 흙냄음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아까보다는 밝아진 느낌이었다. 우산을 접어 들고 심호흡을 크게 했다. 빗방울이 씻어낸 깨끗한 공기가 폐 속 깊숙이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촉촉한 세상은 평화롭고 조용했다. 오늘 아침, 우산을 쓰고 나섰던 공원 산책은 단순한 산책 이상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빗소리 속에서 나만의 조용한 사색을 즐기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가끔은 이렇게 비 오는 날의 고요함을 즐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